#66 即席ラーメン、韓国で60年 日本の技術支援受け誕生、やがて独自の進化

対訳

キム・ジョンス三養ラウンドスクウェア副会長は9月14日、ソウルで三養ラーメン発売60周年記念ビジョン宣布式を開き、「世界的に人気のある『プルダク』をK文化のプラットフォームに発展させ、食品事業から新たなパラダイムを提示し、変化を主導する」と述べた。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은 14일 서울에서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념 비전 선포식을 열고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불닭’을 K-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식품 사업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2614

ラーメンが今年で還暦を迎える。ラーメンの専門サイト「ラーメン完全制服」によれば、現在、韓国で市販されているラーメンの種類は555個。もう韓国だけでなく世界まで太らせている。即席麺の輸出額は2022年に初めて1兆ウォン(1兆1400億ウォン)を突破した。昨年に海外に届いたラーメンは26万トン、麺の長さだけで約1億キロだ。腹が減って、閑で、楽しくて、生きるため、今日もラーメンを煮る。食べる。次の還暦を目指して。

라면의 생애 주기가 올해로 60갑자 한 바퀴를 돌았다. 라면 전문 사이트 ‘라면 완전 정복’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시판 중인 라면 종류만 555개. 이젠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살 찌운다. 즉석 면류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 1조원(1조1400억원)을 돌파했다. 작년에 해외로 뻗어나간 라면은 26만톤, 면발 길이만 약 1억㎞다. 지구를 2670바퀴나 감을 수 있다. 배고파서, 심심해서, 즐거워서, 먹고살기 위해서, 오늘도 라면을 끓인다. 먹는다. 다음 60갑자를 향하여.

国民所得104ドルの時代、63年のうさぎ年に「三養ラーメン」が生まれた。ソウルの南大門市場で5ウォンのお粥を食べようと人々が長い列を作っていた時だった。その貧しい行列から、三養食品のチョン・ジュンウン会長は、日本出張で食べたインスタントラーメンを思い出した。作りやすく、スープまである! 貧しい国の企業家は、日本の明星食品を訪ね、ぶら下がるようにラーメンの技術を学んだ。政府を説得して5万ドルの支援を受け、1961年に明星食品からラーメンの機械2台を輸入した。1963年9月15日、ラーメンの生産が始まった。重さ100グラム、価格は10ウォンだった。

국민소득 104달러 시절, 63년생 토끼띠 ‘삼양라면’이 태어났다. 서울 남대문시장에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고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서던 때였다. 그 가난의 행렬에서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은 일본 출장길에 먹어본 인스턴트 라멘(Ramen)을 떠올렸다. 만들기 쉽고, 국물까지 있다! 가난한 나라의 기업인은 일본 묘조식품을 찾아가 매달리다시피 라면 기술을 배웠다. 정부를 설득해 5만 달러를 지원받아 1961년 묘조식품에서 라면 기계 두 대를 들여왔다. 1963년 9월 15일, 라면 생산이 시작됐다. 중량 100g, 가격은 10원이었다.

当時、ラーメンは日本のラーメンのような鶏だしベースの白いスープだった。ラーメンの進化を呼んだ決定的瞬間は、三養食品の貫鐵洞にある社長室にかかってきた1本の電話から始まる。1966年の秋だった。「大統領がお呼びです」。青瓦台からだった。すぐに朴正熙大統領に電話を替わった。政府の粉食奨励政策に貢献した三養食品を褒めた後、予想外の提案をした。「韓国人は辛いスープが好きなので、ラーメンに唐辛子をちょっと入れるといいと思います」。酔い醒ましをラーメンでしていた朴大統領のアイデアだった。

당시 라면은 일본 라멘처럼 닭 육수 기반의 흰 국물이었다. 라면의 진화를 불러온 결정적 순간은 삼양식품 관철동 사장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된다. 1966년 가을이었다. “대통령이 찾으십니다.” 청와대였다. 곧 박정희 대통령이 전화를 이어받았다.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에 공헌하는 삼양라면을 치하한 뒤, 예상 밖의 제안을 내놓는다. “한국 사람들은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니 라면에 고춧가루를 좀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장을 라면으로 하곤 하던 박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当時、人生の逆転ストーリーにはいつもラーメンがあった。韓国サッカーのレジェンド・車範根は「大学時代もラーメンを食べてボールを蹴った」と言ったことがある。韓国野球のレジェンド・朴賛浩は、ラーメンのために野球を始めた。「野球部はグランドで大鍋でラーメンを煮ていて、とてもうらやましかった」という。1986年に韓国陸上史上最初にソウルアジア大会で3冠王に輝いたイム・チュネ選手は、ラーメンの象徴だ。父は肝硬変で早くに亡くなり、母親は城南市の貧民街で月収15万ウォンで老母と2男2女の面倒を見た。優勝直後、「ラーメンが好きでよく食べる」とイム・チュネは話した。これが、「人生ドラマ」に過剰に没入したある記者の欲で「ラーメンだけ食べて運動した」と書かれた。言った、言わないはさておき、イム・チュネは引退後に龍仁でカルククスの店を始め、また話題を集めた。

그 시절 인생 역전 스토리에는 늘 라면이 함께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은 “대학 다닐 때만해도 라면 먹고 볼을 찼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야구 레전드 박찬호는 라면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부는 운동장에서 큰 솥에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다”는 것이다. 1986년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른 임춘애 선수는 라면의 상징이다. 부친은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떴고, 모친은 성남 달동네에서 월 15만원으로 노모와 2남2녀를 건사했다. 우승 직후 “라면을 즐겨 먹는다”고 임춘애는 말했다. 이것이 ‘인생 드라마’에 과몰입한 어느 기자의 욕심으로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로 와전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춘애는 은퇴 후 용인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4/15/LBZ4QC4CQ5AZPBAXUYGA4CDD7Y/

ちょっと解説

もはや韓国の国民食とも言えるラーメン。韓国の食糧難を解決するための代用食として発売され、食糧政策に乗って普及しただけに、かつては「米が食べられない貧しい人たちが食べるもの」の代名詞でした。往年のスポーツ選手のスターたちの逸話にラーメンがよく登場するのも、彼らの「ハングリー精神」とラーメンのイメージがよくマッチしたからに他なりません。

韓国で最もポピュラーなラーメンは「辛ラーメン」。その逸話を紹介した過去のエピソードはこちら。

韓国で独自の進化を遂げた即席ラーメンが一気に世界に市場を拡大したのは、映画「パラサイト」に登場した「チャパグリ」の影響が大きかったと言われます。チャパグリについてはこちら。

こちらは過去の人気エピソード。こんな人もいるんですね。

音声はこちら

コメント

タイトルとURLをコピー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