対訳
5・18民主化運動当時、戒厳軍として参加した空挺部隊員が、自分の射撃で罪のない死者が発生したことを認め、遺族に会い謝罪と許しを求めた。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을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5・18民主化運動真相究明調査委員会によると、16日午後、国立5·18民主墓地で1980年の5・18民主化運動当時、民間人を死亡させた戒厳軍とその遺族との間に謝罪と許しの場が設けられた。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16일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사망케한 계엄군과 그 유가족 간 사과와 용서의 자리가 마련됐다.
これまで鎮圧作戦に参加した戒厳軍が、自分が目撃した事件で証言したケースはたまにあったが、加害者が自分が直接発砲し、特定の人を死亡させたとして遺族に謝罪の意思を明らかにし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
그간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이 자신이 목격한 사건을 증언한 경우는 더러 있었으나, 가해자가 자신이 직접 발포해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氏は80年当時、第7空挺旅団33大隊8地域隊に所属していた。5月23日、南区老大洞の老大南堤貯水池付近を巡察していたところ、農作業を手伝おうと故郷の宝城に移動していた故パク・ビョンヒョンさん(当時25歳)を撃った。
A씨는 80년 당시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다. 5월 23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순찰하던 중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인 보성으로 이동하던 고(故) 박병현씨(당시 25세)를 쐈다.
パク元部長は当時の状況について、「光州郊外を遮断する目的で1個中隊が偵察任務を遂行していたところ、パク・ビョンヒョンさんと出くわした」として、「パクさんが私たちを見て逃げるので、『逃げれば撃つ』と警告したが、彼が恐怖に襲われて逃走する姿を見て無意識に射撃した」と述べた。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광주 외곽을 차단할 목적으로 1개 중대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박병현씨와 마주쳤다”며 “박씨가 저희를 보고 도망가기에 ‘도망가면 쏜다’고 경고했지만, 그가 겁에 질려 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사격했다”고 진술했다.
この日、会合の席で、Aさんはパク・ビョンヒョンさんの遺族に「この40年間、罪悪感に苦しんだ」と言い「今からでも遺族に会って許しを乞えてよかった」と言い遺族にひざまづいた。パク・ビョンヒョンさんの実兄パク·ジョンスさん(73)は「遅くなっても謝罪してくれてありがとう」と言い「亡くなった弟にまた会ったと思う」と答えた。続いて「勇気を持って名乗り出てくれて本当によかった、ありがたい」と言い「過去の痛みをすべて忘れ堂々と気楽に暮らしてほしい」と述べ、Aさんを抱きしめた。
이날 만남의 자리에서 A씨는 박병현씨의 유가족에게 “지난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이제라도 유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하며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렸다. 박병현씨의 형인 박종수씨(73)는 “늦게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며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용기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편히 살아달라”고 말하며 A씨를 껴안았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martial-law-army_kr_6051971bc5b6ce1016430b74
ちょっと解説
音声の中で、ニュースで取り上げたこの場面が、映画「ペパーミント・キャンディー」を思い起こさせるという話をしています。
1980年の5.18民主化運動(光州事件)については、多くの映画・ドラマ作品でも描かれています。こちらでも詳しく取り上げていますのでご覧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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