パク・チャニル(料理人)
박찬일(요리사)数日前、鷺梁津水産市場に行ったら、貴重な魚が何箱か出てきたではないか。イワシだった。50歳ぐらいの私たちの世代で軍隊に行った人なら、歯ぎしりするまさにあの魚! 軍隊に薬味が十分に普及していないので、ただでさえ生臭い魚がさらに生臭かった。
며칠 전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더니 귀한 생선이 몇 상자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정어리였다. 나이 쉰 무렵의 우리 또래들 중에 군대 다녀온 이들이라면 이를 갈 바로 그 생선! 군대에 양념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니, 안 그래도 비린 생선이 더 비렸다.
イワシは長い間、朝鮮半島で多く食べられていた。 特に東海岸側でたくさん獲れた。浦項市九龍浦に行くと、かつて日本人が住んでいた地域が観光地として造成され、観光客を集めている。
정어리는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흔했다. 특히 동해안 쪽에서 많이 잡혔다. 포항시 구룡포에 가면 과거 일본인이 거주하던 지역이 관광지로 조성되어 관광객을 모은다.
胸の痛む歴史だ。日本統治時代 日本人はイワシが多く獲れるこの地へやってきて一大勢力をなした。最新式のモーターがついた船団を構築して、東海岸のいわしを総ざらいした。いわしは脂の多い魚で、それを搾って戦争物資として使ったからだ。インドシナ半島と太平洋で制海権を米国に渡し、常に石油が不足していた日本は、石油代用品を得るのに必死になった。これは火薬の原料でもあった。いわしの多い九龍浦に日本の船が集まってきたのだ。
가슴 아픈 역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정어리가 많은 이곳에 몰려와 세력을 이뤘다. 최신식 발동기가 달린 선단을 구축해서 동해안의 정어리를 싹쓸이했다. 정어리는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고, 그것을 짜내어 전쟁물자로 썼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태평양에서 제해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늘 석유가 부족했던 일본은 석유 대용품을 구하느라 혈안이 되었다. 이는 화약의 원료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정어리가 많은 구룡포에 일본 배가 몰려들었던 것이다.
いつからか九龍浦でもイワシが捕れなくなった。いや、朝鮮半島の海全体で種が痩せているようだ。十数年前からイワシを市場であまり見かけなくなったのだ。ありふれたイワシの缶詰も見かけられない。たいてい遠洋サンマがその場を占めている。
언제부터인가 구룡포에서도 정어리가 잡히지 않는다. 아니, 한반도 바다 전체에서 씨가 마른 것 같다. 십수년 전부터 정어리가 시장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흔하던 정어리통조림도 보기 힘들다. 대개 원양 꽁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スパゲッティをゆで、フライパンにオリーブ油をかけ回してニンニクを炒める。イワシの身をつぶし、アンチョビの塩辛で味付けする。辛い唐辛子粉(青唐辛子でもいい)を軽くかけ、最後にパン粉を茶色く焼いてのせると、とても美味しいイワシスパゲッティになる。 辛口の白ワイン、なければ辛口のビール1杯を添えて食べる。水産市場のいわしを箱ごと買って、働いている食堂で作ってみる。忘れていた私たちの海の魚。
스파게티를 삶고 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마늘을 볶는다. 정어리 살을 으깨 넣고 안초비 젓으로 양념을 한다. 매운 고춧가루(청양고추도 좋다)를 술술 뿌리고, 마지막에 빵가루를 갈색으로 구워 얹으면 아주 맛있는 정어리 스파게티가 된다.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없으면 쌉쌀한 맛의 맥주 한잔을 곁들여 먹는다. 여름밤의 야식으로 먹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수산시장의 그 정어리를 상자째 사서 일하는 식당에서 만들어 본다. 잊고 있던 우리 바다의 생선.
パク・チャニルさんは韓国で有名な料理人です。#NDK053で紹介した、大阪の立ち飲みが大好きで本まで出してしまった人です。
ロケ地となった浦項・九龍浦は東海岸の港町で、この記事にもある通り、戦前に日本人が多く住んでいた地域です。橋本善吉という和歌山出身の人が建てた豪邸が街の中心部に残っていて、資料館として整備されています。解放にともない日本人は引き揚げ、朝鮮戦争を経て残された家に韓国人が住むようになりました。
そのほかにも数件の木造家屋が残っていますが、ほとんどが空き家か高齢者の住まいとなっていました。2010年代初頭から市長のリーダーシップで観光地としての整備が始まりましたが、現在は人気スポットとなっています。
日本式の木造家屋は「敵産家屋」とも呼ばれ、植民地時代の負の遺産として残すこと自体への社会的な抵抗感がかつてはありました。そもそも古い木造家屋で、韓国の気候にはあまり適さないため、歴史的価値もそれほど重視されて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九龍浦を始め、2010年代半ばごろから各地で観光地化が進んでいます。
2010年に現地を訪れた時点では、九龍浦の日本人街はほぼ手つかず。

カメリアの建物は屋根だけ面影が残っています。

メインのポスターで使われた石段は、神社があった場所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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