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1 BoAからBTSまで、韓流20年史

対訳

韓流が国内外で注目される文化現象となったのは、一般的に、1997年に中国国営放送の中国中央テレビ(CCTV)で放送されたドラマ「愛が何だって」の成功以後とされる。以後、2000年初中盤にドラマ「冬のソナタ」のヒットと、それによる文化現象の「ヨン様」(ペ・ヨンジュンの日本のニックネーム)熱風を通じて、日本も韓流の流れに合流した。音楽の韓流の場合、ダンスデュオのCLONが2000年に発表した歌「チョリョン」が台湾で大きな人気を得たことを始まりとみる。

한류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문화 현상이 된 것은 일반적으로 1997년 중국 국영방송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방송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성공 이후로 여겨진다. 이후 2000년 초중반 드라마 <겨울연가>의 히트와 그로 인한 문화 현상인 ‘욘사마’(배용준의 일본 별명) 열풍을 통해 일본도 한류의 흐름에 합류했다. 음악 한류의 경우, 댄스듀오인 클론이 2000년 발표한 노래 ‘초련’이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을 시작으로 본다.

K-POPは、現地代理店と契約を結んで現地化戦略(その地域の言語とスタイルで歌う)を通じてアルバムを作った第1世代、地元に支社を置き、国内で人気のあるアイドルの音楽を現地で広報することで、海外進出を模索した第2世代を経て、YouTubeやソーシャルメディアなどを基盤に韓国語の歌それ自体で勝負する第3世代へと進化してきた。(韓国国際文化交流振興院、「2018海外韓流の実態調査」)

케이팝은 현지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현지화 전략(그 지역의 언어와 스타일로 노래)을 통해 앨범을 만들었던 1세대를 거쳐, 현지에 지사를 두고 국내에서 인기있는 아이돌의 음악을 현지에서 홍보함으로써 해외 진출을 모색했던 2세대를 지나,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등을 기반으로 한국어 노래 자체로 승부하는 3세대로 발전해왔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18 해외 한류 실태조사’)

日本進出に先に目をつけたのは、SMエンターテイメントだった。2000年代初頭、SMは現地化戦略を選んだ。現地会社のavexと協力して、日本の作曲家の曲をもらって、日本の芸能事務所から日本語の歌でアルバムを出した。「国籍」を消したわけだ。代表的な歌手がBoAだ。日本の大衆はBoAの人気が高まった後に初めて、彼女が韓国人だと知った。2000年代後半の東方神起も同じ戦略で日本で成功した。

일본 진출에 먼저 눈을 뜬 건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였다. 2000년대 초반 에스엠은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 현지 회사인 에이벡스와 합작해 일본 작곡가의 곡을 받아 일본 기획사에서 일본어 노래로 앨범을 냈다. ‘국적’을 지운 셈이다. 대표적인 가수가 보아다. 일본 대중들은 보아의 인기가 높아진 다음에야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2000년대 후반 동방신기도 같은 전략으로 일본에서 성공했다.

以後、現地に支社を置き、国内で人気のあるアイドルの音楽を現地でプロモーションする方式に変わった。韓国語でも歌うが、現地の言語に歌詞を変えたりした。日本、アメリカ、中国、タイなど現地の国籍を持つメンバーを1、2人ずつ入れて「軟着陸」に活用した。この方法で2000年代後半から2PM、Super Juniorなどが中国、タイなどで大きな人気を集めた。

이후 현지에 지사를 두고 국내에서 인기있는 아이돌의 음악을 현지에서 프로모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어로도 노래를 부르지만, 현지 언어로 가사를 바꾸기도 했다. 일본, 미국, 중국, 타이 등 현지 국적을 가진 멤버들을 한두명씩 포함시켜 ‘연착륙’에 활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투피엠(2PM), 슈퍼주니어 등이 중국, 타이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東アジアの外での可能性を見せた出来事が2011年5月、SM所属歌手たちの合同公演「SMTown Live」フランス・パリ公演だった。この公演のチケットがいち早く売り切れ、チケットを入手できなかったヨーロッパ各国のK-POPファンが、ルーヴル美術館の前でSuper Juniorのダンスをフラッシュモブで再現したことが話題になった。

동아시아 바깥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 2011년 5월 에스엠 소속 가수들의 합동 공연 ‘에스엠 타운 라이브’(SM Town Live) 프랑스 파리 공연이었다. 이 공연의 표가 일찍 매진되면서 표를 구하지 못한 유럽 여러 국가의 케이팝 팬들이,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슈퍼주니어의 춤을 플래시몹으로 재현한 것이 화제가 됐다.

K-POP歌手のアメリカポップ市場への進出は、2008年ごろに始まった。少女時代、KARA、RAIN(ピ)、ワンダーガールス、BoA、2NE1などが進出したが、すべてビルボードチャート上位進出に失敗した。BoAが2009年、ビルボード200チャートで127位に上がり、2014年に2NE1も同じチャートの61位に進入したのが最高だった。

케이팝 가수들의 미국 팝 시장 진출은 2008년께 시작됐다. 소녀시대, 카라, 비, 원더걸스, 보아, 투애니원(2NE1) 등이 진출했지만 모두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 보아가 2009년 빌보드 200 차트에서 127위에 오르고, 2014년 투애니원이 같은 차트 61위에 진입한 것에 그쳤다.

以後、2012年にPSYの「江南スタイル」がアメリカ・ビルボードのシングルチャート最高順位2位を記録する大ヒットとなり、K-POPを世界に拡大する契機になった。しかしその後、持続的に人気を得ることには失敗し、アメリカ市場でのK-POPの人気は停滞した。

이후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최고 순위 2위를 기록하는 큰 인기를 얻으면서 케이팝을 전세계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고 미국 시장에서 케이팝의 인기는 주춤해졌다.

2017年ごろ、防弾少年団がアメリカ市場でK-POPを復興する先頭に立った。防弾少年団は、YouTubeやツイッター、フェイスブックなど、さまざまなデジタルチャンネルを活用して、海外のファンと直接コミュニケーションして、英語以外の韓国語の歌で勝負するなど、新しい海外進出方式を試みた。結局、防弾少年団は、ビルボードのトップ・アーティスト賞を3年連続で受賞するなどK-POPの歴史を書き換えた。

2017년 무렵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장에서 케이팝을 부흥하는 데 앞장섰다. 방탄소년단은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활용해 해외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영어가 아닌 한국어 노래로 승부하는 등 새로운 해외 진출 방식을 시도했다. 결국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톱 아티스트상을 3년 연속 수상하는 등 케이팝의 역사를 다시 썼다.

大衆音楽評論家のキム・チャッカ氏は、「BoAがブランドは日本で、作るのは韓国という、一種のOEM方式だったとすれば、以後のK-POPグループは、韓国が企画と制作を担当し、現地人メンバーが部品として投入される形態に製作方式を変えた」として「このようなシステムが可能だったのは、韓国の練習生システムと、20年間で蓄積されたアイドル育成のノウハウをビジネスモデルとして作りあげたからだ」と語った。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보아가 브랜드는 일본이고 만드는 건 한국인 일종의 오이엠(OEM) 방식이었다면, 이후 케이팝 그룹들은 한국이 기획과 제작을 맡고 현지인 멤버가 부품으로 투입되는 형태로 제작 방식을 바꿨다”며 “이런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과 20년간 축적된 아이돌 육성 노하우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原文:

보아에서 방탄소년단까지, K팝은 이렇게 변화해 왔다
'현지화'를 시도했던 1세대부터 한국어로 승부를 보는 3세대까지.

音声はこちら

‎ニュースde韓国語:Apple Podcast内の#069 BoAからBTSまで韓流20年史。平田由紀江さんを迎えて(特別編)
‎ニュースde韓国語の番組、エピソード#069 BoAからBTSまで韓流20年史。平田由紀江さんを迎えて(特別編)-2019年6月27日
ニュースde韓国語 - #069 BoAからBTSまで韓流20年史。平田由紀江さんを迎えて(特別編)
Guest: 平田由紀江さん(日本女子大准教授) ▼BoAからBTSまで、韓流20年史 Twitter: @newsdekorean Instagram: @newsdekorean Facebook: YouTube: Official HP:

コメント

タイトルとURLをコピー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