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n年度、催涙弾がパンパンとはじけていたソウル某大学在学中の彼は、単位やアルバイト、英語の成績など世俗的な価値から脱して闘争を続けた。6月抗争(1987年の民主化闘争)が終わった後、某大手企業では、大学を卒業したての彼を採用し、そうして生きてきて20年が経った後、ある日、結婚を控えた長女は、父親と酒を飲んでいる途中で怒って荷物を持って出ていった。「ああ本当、だから若い人たちはパパとビール一杯やるのすら嫌なのよ。! 完全にオッサン! わ、か、る?」
8n년도, 최루탄 팡팡 터지던 서울 모 대학 재학 중이던 그는 학점이나 알바, 영어성적 따위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투쟁을 이어갔다. 6월 항쟁이 끝난 뒤 모 대기업에서는 갓 대학을 졸업한 그를 모셔갔고, 그렇게 살아온 지 20여년이 흐른 뒤 어느날 결혼을 앞둔 큰딸은 그와 술을 마시던 중 화를 내며 짐을 싸들고 나가버렸다. “아 진짜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아빠랑 오백한잔조차 마시기 싫어하지! 완전 꼰대! 아.시.겠.어.요?
彼は法的に保証された9時出勤を私が守るという理由で「最低20分は早く行かなきゃ。会社生活への基本がなってないな…」と舌を打ち、入社時は編集長が保証してくれた「服装の自由」を維持すると「狂ってる…会社には、会社に着ていく服が別にあるというのに…」と嘆いたりした。
그는 법적으로 보장된 9시 출근을 내가 지킨다는 이유로 “최소 20분은 빨리 가야지.. 회사생활에 대한 기본이 안 돼 있구만..”이라고 혀를 찼으며, 입사시 편집장님께서 보장해 주신 ‘자유복장’을 유지하자 “미친것… 회사에는 회사에 입고 갈 옷이 따로 있는 건데…”라며 개탄스러워하곤 했다.
暑くて死にそうな状況で、あえてその必要もないのに、上司でもなくパパが気にするという理由で、つま先の見えない靴にコーヒー色のストッキングを履いて、お尻が汗びっしょりになるペンシルスカートをはいて、ブラジャーが見えないようにキャミソールを重ね着した後、薄いブラウスを着なければならないの?
더워 죽겠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상사도 아니고 아빠가 눈치준다는 이유로 발가락 안 보이는 구두에 커피색 스타킹을 신고 엉덩이에 땀차는 펜슬스커트를 입고 브래지어 안 보이게 캐미솔을 덧입은 뒤 얇은 블라우스를 입어야 하나?
私と父の葛藤はますます深刻化した。私が出勤時にはいていったハワイアンショートパンツとグレーのTシャツ、そしてペタンコサンダルを見た彼は、国政壟断疑惑が事実だとわかったときよりも大きな衝撃を受けた。彼は自分がオッサンなのではなく、私があまりにひどいと主張したが、彼の精神の健康のために、私の隣の席のポケモンボールのバッグをしょって「させられる勉強はしない」と書かれたTシャツを着て出勤する某先輩の姿は、とても見せられかった。
나와 그의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내가 출근하겠다며 걸치고 간 하와이안 반바지와 회색 티셔츠 그리고 삼선쓰레빠를 본 그는 국정농단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꼰대인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심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옆자리의 포켓몬 볼 가방을 맨 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고 적힌 티샤츠를 입고 출근하는 모 선배의 모습은 차마 보여드리지 못했다.
とにかく、私はこんなパパから逃げてハンサムな新郎と結婚してしまった。だけど私の親不孝に祖先が怒ったのかはともかく、私は罰を受けた。新郎が父みたいなオッサンだったことだった。
어쨌든 나는 그런 아빠로부터 도망쳐 잘생긴 신랑과 결혼해버렸다. 근데 나의 불효에 우리네 조상님들이 화가 나셨는지 어쨌는지 나는 벌을 받았다. 신랑이 아버지만큼 꼰대였던 것이었다.
デジタルメディア業界の特性上、週末の勤務が頻繁にあり、週末に働いたら平日に1日の代休が与えられる。この代休は1日前に提出すればよく、新郎は退勤後に初めてその事実を知ることが多かった。「何? また休み?」それとともに「そうやって前日いきなり休暇を使えば、社会的評判が悪くなる」とか「ちゃんと仕事はやったのか。今日、Facebookのハフィントンを見たら、お前の名前で作成された記事はあまりなかったけど」とか「適当に書いただろう。会社の仕事の一環だろうけどそれじゃだめだ。魂を込めて書け」とか…。だから本当に本当に憎らしかった。悔しくて仕方なかった。
디지털미디어 업계 특성상 주말 근무가 잦아 주말에 일했으면 평일에 하루 대체휴가로 쉬는 날이 주어진다. 이 대체휴가는 하루 전날 제출하면 돼서, 신랑은 퇴근을 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될 때가 많았다. “뭐? 또 휴가라고?”그러면서 “그렇게 너무 하루 전날 휴가를 쓰면 사회적 평판에 무리가 간다”거나 “제대로 일은 처리한 거냐. 오늘 페이스북에 허핑턴 들어가 보니까 너 이름으로 작성된 기사가 얼마 없던데”라거나 “대충 썼지. 회사일의 일환인데 그래선 안 된다. 영혼을 갈아서 써라”고 하거나……. 아주 복장이 터지고 발딱 미쳐벌일 지경이었다.
しかし、幸いなことに勧善懲悪はここまでだった。数日前、私は平日に気分がよくて夫の退勤時間に合わせて夕飯を作った。「あなた、将来すごいオッサンになりそうね」。するとしおらしく豚肉をハサミで切った夫は言った。「もちろん。オレは今もオッサンだ。君にたくさん説教してるじゃないか」。一つも認めなかったパパとは違う方向の回答だった。それと共に、夫は私のお皿に豚肉とウズラの卵をよそってくれた。
그러나 다행히 권선징악은 여기까지였다. 며칠 전, 나는 평일 휴가를 즐긴 뒤 기분이 좋아서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식사를 차렸다. “오빠는 나중에 엄청 꼰대 아저씨가 될 거야” 그러자 조신하게 돼지고기를 가위로 자르던 남편이 말했다. “당연하지. 난 지금도 꼰대야. 당신한테 엄청 잔소리 하잖아.”1도 인정하지 않던 아빠와는 다른 방향의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내 그릇에 돼지고기와 장조림 메추리알을 올려 주었다.
꼰대の語源は#NDK002でも紹介しました。
それによれば、
中央日報は「フランス語のコンテ(Comte)を日本式に呼んだのが「コンデ」であり、日本の植民地時代の頃に李完用など親日派たちが伯爵などの爵位を授与され、自分自身を「コンデ」と自慢げに称したことに由来した」という説を主張したが、明らかにはなっていない。
という説があります。
コメント
[…] […]